잘못했습니다

이번 한국 지방 선거가 끝난 다음, 야당의원은 커다란 현수막을 걸고는 그앞에 다들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한결같이 노넥타이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그들의 눈은 아래로 깔려 있고, 고개는 45도로 꺾여져 있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정치인들이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장면은 동서를 막론하고 상당히 드문 일이지만,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큼지막한 현수막을 뒤에 걸고 있는 경우는 더더욱 드문 일이다. 이름도 모르는 한국 정치가들보다는 이 떡하니 걸려있는 현수막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이번을 계기로 쇄신을 하겠다거나,

이번 결과에 전적인 책임을 지겠다거나,

대단한 실망을 줘서 정말 ‘죄송’ 하다는 말이야 일상이지만, 도대체 ‘잘못’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선생님이나 경찰에게나 하는 말이지 않은가. 저희가 잘못했으니 벌을 받는게 지당합니다, 하지만 잘못은 저한테 있지 제 자식은 잘못이 없습니다. 저희 모두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니, 이번에는 너그럽게 용서하고 가벼운 처벌을 주십시오, 라고 빌어야 하는 것이 바로 ‘잘못’을 했을 경우이다.

어릴 적부터 잘못을 뉘우치고 겸손하게 자기 잘못인 줄 알고 잘못을 시인하는 미덕을 배워온 한국인들에게 이 잘못은 너무나 일상적인 말이다. 누가 잘못했는지의 문제는 싸움의 발단이 되고, 그래서 법정으로까지 가지만, 잘잘못은 묻지 않겠다는 전제가 붙으면, 싸우던 사람들도 그래 이번에는 그냥 잘못을 덮어 두자고, 순순히 나오는 경우도 많다.

다 내 잘못입니다, 하면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과와 사죄가 되고, 잘못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한다. 자녀한테, 잘못했어, 안했어로 다구쳐서, 제가 잘못했어요, 라는 말을 유도해야 속이 풀리는게대부분의 한국부모다. 미안해요 (I am sorry)를 유도하는 영어권 부모들과는 다르다. 잘못했다는 말은 미안해요라는 말이 아니다.

이렇게 상용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이 ‘잘못’은 영어로 풀기가 의외로 힘들다.

우선 ‘잘못’ 한 것은 잘 ‘못한’ 것 (I didn’t do well)이 아니다.

명사로 말하자면, 책임을 져야 하는 ‘잘못’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fault다. I was at fault 또는 It was my fault이라고 하면 내가 잘못했다, 가 된다. 하지만 이 표현이 쓰이는 전형적인 상황은 ‘교통 사고’ 현장이다. 트럭 운전사의 잘못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승용차 운전사는 잘못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로 흔히 보도되는 그 ‘잘못’이다. 보상 책임의 왈가왈부를 거론할 때 이 ‘잘못’의 근거는 중요하다. 인격상의, 도덕상의 미숙함과 헛점까지를 건드릴 수 있는 ‘잘못’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면 생각을 다시 바꾸자. 그 다음 선택은 아마 I was wrong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틀렸다가 아닌가! 니가 맞고 내가 틀렸다 (You were right but I was wrong). 미팅 날짜를 착각했을 때, 기차 시간을 착각했을 때나, 쓰는 말이다. 자책감은 있지만, 비도덕감은 없다. 책임은 나에게 있지만, 그건 그저 ‘실수’이고 ‘착각’일 뿐 내가 사죄해야 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반면에 행위에 촛점을 맞추면, 의미가 가까워진다.

I did it wrong

What I did was wrong

I did everything wrong   

절대 잘못한 게 없다고 할 때는

I haven’t done anything wrong

이라고 하면 된다.

이렇게 적고 났지만, 여전히 영어의 어느 표현도 한국말의

‘잘못했습니다’라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한국인의 습성상 잘못의 시인은 다소 무조건적이되, 상세한 잘못의 세목을 따지는 건 피하는데 있는 것 같다.  누가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니, 꼬치꼬치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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