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의 애로: 입냄새와의 전쟁

통역에 임할 때, 입냄새가 정말 많이 나는 한국인 고객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1. 일단 문제의 입냄새가 자신의 입에서 발생하는 것인지 의심해본다 (고객을 먼저 의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2. 누구 입냄새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가볍게 웃는 첫하면서, 가만히 자신의 손을 입으로 가져가서 가볍게 후, 하고 불러본다 (50퍼센트 정도는 이렇게 해서 판명된다).
  3. 자신이 아니라는 판정이 잠정적으로 이루어지면, 이제 약간은 편안한 마음으로 고객의 입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코호흡은 잠시 멈춘다)
  4. 같이 앉아 있는 호주인도 상대 한국인의 고약한 구취를 동감하는지 언뜻 표정을 살핀다 (한번도 얼굴을 찡그리는 표정을 하는 호주인은 본 적이 없다. 이럴때마다 내가 너무 민감한 건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아니다.)
  5. 몸의 각도를 약간 바꿔본다. 이를테면, 고객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면, 몸을 약간 틀어서, 고객의 입과 나의 코 사이의 거리를 가급적 늘리도록 한다 (하지만 고객의 눈과 나의 눈 사이의 친근한 거리는 유지하도록 한다, 가능하다면).
  6. 이게 별 도움이 안된다면,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코를 푸는 척 하면서 손수건을 코에다 가져댄다. 심호흡을 한다. 이 경우에 대비해서 아침에 나올 적에는 손수건에 진한 향수를 미리 뿌려둔다 (대부분의 고객은 나의 손수건과 심호흡 사이의 연관성과 필연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7. 고객이 계속, 오랫동안, 말을 한다면, 열심히 노트를 하는 척 고개를 아예 숙여버린다. 이렇게 함으로써, 고객의 입과 내 코의 거리 간격은 최대가 된다
  8. 그러다가 내가 계속, 오랫동안, 통역할 순서가 되면 고객은 입을 꽉 다물고 있으므로, 나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을 필요도, 고개를 팍 숙일 필요도 없다. 상냥하게 웃으면서 자신감있게 진행한다.
  9. 그러나, 예상치 않은 일은 있는 법. 중간에 나의 통역을 가로막고 다시 말을 시작하거나, 내가 통역을 하는데도 혼자서 말을 계속 하는 고객이 있다.
  10. 그럴 경우는 욱, 하는 뱃속 기합과 콧김을 쎄게 유지한 채, 통역을 지속한다. 손목에 있는 시계로 눈이 간다. 아직도 30분이 더 남았다.

One thought on “통역의 애로: 입냄새와의 전쟁

  1. 표현이 재미있으시네요 꼭 짧은 단편 수필같네요.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당신 입냄새 난다’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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